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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2017동유럽

동유럽여행 - 10. 폴란드 오시비엥침 : 인류 최악의 역사, 아우슈비츠 & 비르케나우 수용소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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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여행 - 10. 폴란드 오시비엥침 : 인류 최악의 역사,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가다 (아우슈비츠/ 오시비엥침/ 유태인 수용소)

프라하의 밤 거리를 여기저기 걸어다니다가 프라하 중앙역에 도착하니 9시.

역 안의 카페에서 두 시간 정도 책을 읽다보니 어느새 크라쿠프행 기차 시간이 다 되어간다.

플랫폼으로 올라가니 승무원이 친절하게 내 자리를 안내해준다.


침대열차의 분위기는 대충 이런 식. 복도를 따라 방이 쭉 들어서있다.


방 안에는 세면시설도 갖춰져있어서 굳이 화장실까지 가지 않아도 세수나 양치 정도는 방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3인실로 예약했는데 아르헨티나인과 둘이서 방을 쓰게 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기차가 출발하기도 전에 꽤 친해지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인데 방학을 맞아 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프라하에서는 혼자 여행하는데 외로워서 미치는 줄 알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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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었다 눈을 뜨니 어느새 국경을 넘어 크라쿠프에 가까워져있다.

입맛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 승무원이 나눠주는 크로와상과 커피를 억지로 뱃속에 넣고 있으니 크라쿠프역에 도착.

같이 타고 온 아르헨티나인과 작별하고 호스텔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리셉셔니스트가 아직 시간이 일러서 체크인은 어렵고, 대신 아침에 출발하는 아우슈비츠 투어에 다녀오는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어차피 머무는 동안 아우슈비츠에 가볼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로 한다.


19세기 초중반, 인종주의에 찌들어있던 나치는 그 광기의 화살을 유대인에게로 돌리기 시작했다.

 나치의 광기는 당시 유럽에 팽배했던 반유대감정과 맞물려 홀로코스트라는, 인류 최악의 역사로 표출된다.

처음에는 유대인들의 법적 권리를 빼앗았고, 그 다음에는 유대인들의 재산을 몰수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강제 노동수용소를 만들어 유대인의 목숨마저 빼앗아버렸다.

폴란드어로 오시비엥침, 독일어로 아우슈비츠라 불리는 이 곳의 수용소는 홀로코스트라는 역사를 상징하는 곳이다.


"ARBEIT MACHT FREI - 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

하지만 노동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유가 아닌 죽음뿐이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이곳저곳을 안내해준 전문 가이드.

이곳을 찾는 관람객 대다수가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둘러보는 듯 했다.


"과거를 잊은 자는 과거를 되풀이한다."


아우슈비츠에 수감된 수감자들의 출신지들.

아우슈비츠에는 유태인 뿐 아니라 2차 세계대전의 전쟁포로들도 수용되어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 악명높은 치클론B 독가스.

계속해서 늘어나는 수감자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죽여야할지 고민하던 나치는 독가스를 사용하는 하는 방안을 생각해낸다.

전쟁통에 귀한 총알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뻐한 나치는 치클론B 독가스를 살포해 수감자들을 대량으로 학살하기 시작한다.

수백 명의 수감자들이 가스실에 들어오면 독일군은 문을 걸어잠근 뒤 굴뚝 위에서 치클론B 깡통을 따 가스실에 뿌렸다.

가스실에 갇힌 수감자들은 가스가 뿌려진 뒤 30분 내에 모두 목숨을 잃었다.


날씨 탓에 더욱 음산한 분위기의 수용소.


수북하게 쌓여있는 유대인들의 집기들.

나치가 유대인을 강제수용소로 옮길 때, 집에 있는 모든 짐을 싸가지고 나오게 했다고 한다.

단순히 거주지를 옮기는 줄로만 알았던 유대인들은 가방 가득 살림살이를 챙겨서 수용소행 열차에 올랐다.

열차가 수용소에 도착하면 유대인들은 영문도 모른채 수감되었고, 유대인들의 살림살이는 독일인들에게 재분배되었다.


희생자들의 신발들.

구두, 샌들, 운동화, 심지어 아동화까지 다양한 신발들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수감자들의 사진들.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강제노역과 영양실조 탓에 1년을 넘기지 못하고 희생되었다.

그마저도 노역으로 써먹을 수 있는 남성 수용자들의 이야기이고,

여성이나 어린이들의 경우는 수용소에 도착하자마자 가스실로 보내졌다고 한다.


태어난 지 몇 년 밖에 안된 아이들도 홀로코스트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수용소 한 구석에 있던 콘크리트벽.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있는데, 이 곳에서는 총살형이 집행되었다.


드넓은 수용소 부지에 똑같이 생긴 건물이 빼곡히 들어서있다.

이 곳에 갇혀있었던 수감자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조금이나마 실감이 된다.


철조망 속에 갇혀있던 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지.


이 곳이 바로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가스실.

샤워실처럼 꾸며져있는데, 이렇게 만들어놓은 이유가 또 한번 소름끼친다.

바로 희생자들의 옷을 강제로 벗길 필요가 없었기 때문.

'샤워를 한다'는 말에 희생자들은 죄수복을 벗어 직접 개켜놓은 뒤 샤워를 하러 걸어들어갔다.

그러나 샤워기에서 나온 것은 물이 아닌 치클론B였고, 희생자들은 영문도 모른채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어갔다. 

그리고 희생자들이 개켜놓은 죄수복은 간단히 수거되어 뒤이어 들어온 신규 수감자들에게 지급되었다.


희생자들이 죽어가며 벽에 낸 손톱자국들.


어떤 시체는 손톱이 다 빠져있었고, 어떤 시체는 몸부림치다가 팔이 탈골되어 키만큼 늘어나있었다고 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둘러본 뒤 근처에 있는 비르케나우 수용소도 둘러본다.

유대인 및 기타 수감자들이 아우슈비츠에 이송되어 오면 제일 먼저 비르케나우 수용소에 도착하게 된다.

수감자들이 기차에서 내리면 바로 '분류작업'이 실행되었다.

성인 남녀, 노약자 및 어린이를 먼저 분류하고, 성인 남녀 중에서도 노동 가능자와 노동 불가능자를 분류했다.

그렇게 분류된 노동 가능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가스실로 보내졌다.


분류작업이 실시되었던 철길.

수감자들이 기차에서 내리면 나치 친위대 군의관들은 자신의 기분에 따라 수감자들의 운명을 결정했다.


수감자들은 이런 화물열차에 가축처럼 실려서 아우슈비츠까지 이송되었다.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글귀들.

여러 나라의 언어로 새겨져 있다.


폭격으로 무너져내린 건물들이 보인다.

불필요한 복원작업을 하지 않고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함으로써 그 때의 참혹함이 더 와닿는다.


인류 최악의 역사가 일어난 아우슈비츠.

둘러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지금은 그저 조용하게 잠들어있는 모습이지만, 한창 대량학살이 벌어지던 당시의 모습은 어땠을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그저 다시는 이러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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